외면일기

누가 그랬던가, 일기는 쓰는 동시에 독자를 의식한 것이라고. 우선 일기를 쓰는 내가 첫 번째 독자이고 웬만한 관리가 아니고서야 또 다른 독자는 얼마든지 생긴다는 것이다.
어릴적 은밀한 내면 일기를 써 놓은 것이 누군가에게 읽혀져 얼굴을 붉히는 일은 누구나 한번쯤 겪는 일이다. 그렇게 의기소침해지고 나면 일기 쓰는 일이 영 부담스러워지고 만다. 글 쓰는 소소한 감동의 일상은 점점 멀어져 간다.
그렇다면 미셸 투르니에처럼 외면일기는 어떨까? 내 일상의 잔잔한 기록.. 그의 말을 빌리자면 -지난날의 소박한 시골 귀족들이 추수, 아이들의 출생, 결혼, 초상, 날씨의 급변 등을 적어두곤 했던 '출납부'와 비슷한 것- 말이다.
80에서 멀어져 가는것이 행복한 영감에게 영감을 얻은 나는, 일기쓰기에 대해 새롭게 용기내어 본다.

by 물안경 | 2007/03/16 14:03 | 외면일기: 일상의 기록 | 트랙백 | 덧글(0)

뒷모습 | 미셸 트루니에 저, 김화영 옮김 | 현대문학

영국에 알랭 드 보통이 있다면 프랑스엔 미셸 투르니에가 있다. 투르니에의 글에서는 목가적인 풀냄새가 나고, 또 그것은 때론 신화처럼 신비롭기까지 하다.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 속 역 대합실처럼 도시와 고독이 만나는 공간에 어울리는 자판기 커피가 드 보통이라면, 투르니에는 수십 년 묵은 나무들이 둘러싸고 있는 옛날 수도원 건물을 개조해서 만든 시골집에 어울리는 벽난로 같다. 카페인의 냉소에 중독된 나는 까다롭고 신경질적인 드 보통이 마냥 좋다가도 가끔은 아주 오래 묵은 와인을 따고 싶어지듯, 많이 배운 교장 선생님 같은 투르니에가 또 못내 그립다.

뒷모습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상상력이 필요하다. 상상력은 이성에 반하는 비합리적인 것들을 대표하지 않는다. 그것은 진실이 아닌 것이 아니라, 수많은 진실 중 한 가지 판본(version)이므로.

오늘날 우리를 인천 공항에서 런던의 히드로 공항으로 날라주거나 혹은 브레송의 예리한 감식안을 내 방 의자에 앉아 한 권의 사진첩 속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물론 과학의 힘이다. 과학이 비행기를 만들고 사진기를 만들었으니. 그러나 수많은 과학의 법칙들도 하나의 작은 가설에서 시작했다. 가설은 상상력이란 재료를 빚어 만든, 속이 꽉찬 만두 같은 것이다. 때로 비행기나 사진기 같은 과학에서 낭만을 느끼는 것은, 그 속에서 상상력이란 재료 맛이 '살짜쿵' 배어나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는 이 책에서 미셸 투르니에가 자기만의 상상력으로 세운 가설을 읽는다. 그는 뒷모습이 앞모습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해 준다고, 혹은 뒷모습이 바로 우리 자신, 이라고 말하는 것만 같다.

파도가 차가운 맥주 거품처럼 일렁이는 바다 한 가운데 두 남녀가 서 있다. 어쩐지 전체적으로 을씨년스러워 보이는 건 파도 때문일까, 아니면 두 사람의 드러난 맨살 때문일까. 남자는 허름해 뵈는 셔츠를 입고 검은 바지를 정강이께까지 걷어붙였다. 여자는 하얀 치마를 허벅지가 훤히 보이도록 들어올렸고 다소 품이 커 보이는 외투를 입고 있는데 펑퍼짐한 뒷모습이 꼭 임신이라도 한 것 같다. 바닷물에선 많은 사람들 앞에서 오줌을 지린 소년의 난감한 슬픔 냄새가 나는 듯하고, 두 사람의 드러나 종아리에는 자디잔 소름이 돋아나 있을 것만 같다. 이들의 뒷모습을 투르니에는 이렇게 읽는다.

저 남녀는 가난한 사람들이다, 틀림없다!/ 부자들이라면 아예 수영을 한다./ 수영하는 데 필요한 팬티도 수영복도/ 다 갖춰놓았다. 수영복의 표면적은 그걸 가진/ 사람의 재산에 반비례하는 법. 때문에/ 아주 큰 부자들은 아예 벌거벗고 헤엄친다./ 부자들은 물론 수영을 할 줄 알기에./ 가난한 사람들은 수줍다. 추위를 타고 겁이/ 많다. 그래서 세상의 첫날처럼,/ 세상의 마지막 날처럼, 아주 조금씩만 앞으로/ 나가본다. 남자는 양말을 신은 채, 여자는 치마를 약간/ 걷어 올리고. 그러나 이 즐거움과 정다움이 이 한때를/ 영원히 잊지 못할 순간으로 만들어 놓는다.

가난한 사람들은 수줍다! 이 자명하고도 간결한 진실이라니. 투르니에의 상상력이 빚어내는 수많은 뒷모습에 대한 해석, 그것은 너무나 끈질기고 투철하여 진실성을 의심할 수 없게 만든다. 말로 그림을 그리는 화가. 상상력으로 사진을 찍는 포토그래퍼.

드 보통이 이미 역설한 바 있지만, 우리는 사진에 대해 안이한 태도를 취한다. 사진을 찍어 두면 자동적으로 나의 의견이나 태도가 결정된다고 믿는 것이다. 물론 퓰리처상 후보에 오를 만큼 강렬하고 인상적인 보도 사진들은 그 자체로 하나의 '주장'이기도 하다. 그러나 '똑딱이'를 척척 눌러 무심코 양산하는 사진들 중에서 대상에 대한 관심을 넘어 관점까지 표현하는 사진들이 몇 장이나 될까.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먹은 음식을 찍은 사소한 사진 한 장에 제목이라도 붙여주면, 갑자기 애가 달라 보인다. 엄마 없는 '코찔찔이'에서 사랑받고 자라는 소공녀처럼 보인다고 할까? 거기다 한 문단 정도 단상까지 덧붙여주면 미셸 투르니에 부럽지 않은 나만의 세상 읽기가 된다.

위에서 인용한 투르니에의 묘사에 대응하는 사진(오른쪽)이다. 상상했던 것보다 시시할 수도 혹은 더 인상적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책에는 여러 가지 뒷모습을 찍은 사진들과 함께 투르니에의 한 편의 시와도 같은 코멘트가 달려 있다. 투르니에의 글을 먼저 읽고 상상한 이미지를 옆 페이지의 사진과 비교해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혹은 반대로 사진을 먼저 보고 자기 나름대로의 '말 그림'을 그려보고 난 후 투르니에의 글과 비교해 보는 것도 흥미롭다.

물론 미욱한 나의 짧은 생각은 노련한 투르니에의 글과 비교하는 것조차 미안할 정도로 소박했지만, 내가 보지 못한 것들이 무엇이었는지 확연히 알게 되었다는 점에서 나름의 소득이 있었다. 아래(책 속 밑줄 긋기에 있는 사진)는 또 다른 뒷모습 하나. 피터팬처럼 차려 입은 저 꼬마는 땅바닥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오늘의 책을 리뷰하신 '피지'님은
수면의 과학을 보고 샬롯 갱스부르에게 미쳐 버린, 그런 나른한 눈빛을 갈망하는, 번역가의 탈을 쓴 유사 휴머니스트. 번역작가라 불릴 그 날을 꿈꾸지만, 지금은 그냥 삐약삐약 초보 번역가. <바른번역> 소속이며 네이버 까페 <골목>의 부운영자이다. http://blog.naver.com/cpbach
그들이 당도하게 된 만년은 돌이킬 수 없는 유배지의 삶을 연상시킨다 - 책 속 밑줄 긋기
한 여자가 밟아가는 운명의 도정들을
말해주는 듯한 이 사진 속에는 왜 이토록
정겹고도 가차 없는 우수가 깃들어 있는
것일까? 약혼, 결혼, 과부의 삶…… 마치
해를 거듭할수록 '사막화' 현상
-환경론자들의 말처럼-으로 말미암아
여자 주변의 인간적인 풍경이 황폐해지고
있는 것만 같다. 많은 사람들의 경우 그들이
당도하게 된 만년은 돌이킬 수 없는
유배지의 삶을 연상시킨다.

내 생각에 이 작품의 힘은
거기서 우러나오는 이중의, 서로 모순된 인상에서
오는 것 같다. 우선, 어떤 유치한 꿈의
발현일 듯한 이 한심한 변장술의 서툶이
마음을 흔든다. 땅에 끌리는 플라타너스
잎사귀 드레스, 마로니에 잎사귀로 만든 예복, 그리고
또 걸음을 멈추고 선 저 포즈, 기다림. 무엇을?
아마도 이 변신이 불러올지도
모를 그 무슨 기적을.
그러나 동시에 놀라울 정도로 성공한
변장. 그 서툶과 비참한 몰골에도 불구하고
이 변장으로 인하여 이 축소형 여인은 분명 속이
빈 나무뿌리에서 튀어나온 존재. 나무들의
저 높은 잎새들로부터 툭 떨어진 숲의
지신地神이라 해서 믿을 만하지 않은가
프랑스를 대표하는 최고의 작가, 미셸 투르니에(Michel Tournier)
1924년 파리 출생. 파리 문과대학과 법과대학을 수학, 석사과정은 철학을 전공했다. 철학 교수가 되고자 했으나 자격 시험에 실패 후 번역과 방송국에서의 일을 하다가 출판사인 플롱사에서 문학부장직을 10년 동안 맡았던 경험이 계기가 되어 문학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1967년 첫 소설 <방드르디 혹은 태평양의 끝>으로 아카데미 프랑세즈의 소설 대상을, 1970년 <마왕>으로 공쿠르상을 수상했다. 1972년에는 공쿠르상을 심사하는 아카데미 공쿠르 회원으로 추대, 프랑스 문단에서 대가로서의 확고한 위치를 획득했다. 현재 파리 근교의 한적한 마을 생 레미 슈브류즈의 사제관에서 홀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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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면일기
차분하고 깔끔한 영상을 선사하는 사진작가, 에두아르 부바(Edouard Boubat)
1923년 파리 출생. 제2차 세계대전 중 파리에 있는 에콜 에스티엔느에서 사진요판술을 공부한 것이 전부일 만큼 독학으로 사진술을 익혔다. 그럼에도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은 순간'을 예술로 승화하는 탁월한 능력이, 타인들에 대한 관심에 역점을 둔 전후의 미술 성향과 조화를 이루었다. 대상과의 친밀한 교감을 통해 피사체에 접근한 것으로 평가된다. 첫 전시회는 레프트 뱅크의 '라 윈' 서점에서 열렸다. 1947년에 코닥상을 수상했으며, 고급 예술지 <레알리테>와 오랫동안 협력한 다음 1967년부터 독립작가로 활동하면서 1977년 사진 축제 '아를르의 만남'을 기획하였고 1984년에는 사진 부문 국가대상을 수상했다. 1999년 파리에서 영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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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안경 | 2007/03/15 19:13 | 트랙백 | 덧글(0)

프랑스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1929-2007) 타계

2007-03-07 오전 9:18:35 프레시안

프랑스의 저명 철학자이자 사회 이론가인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 1929~2007)가 6일 파리의 자택에서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77세.

'시뮐라시옹'(거짓 꾸밈.위장) 이론으로 유명한 고인은 1929년 서부도시 랭스에서 태어나 고등학교 교사를 지낸 뒤 파리 10대학에서 사회학을 가르치며 50권 이상의 저서를 남겼다.

시뮐라시옹 이론은 현대사회에서 원본과 복사본, 현실과 가상현실의 경계와 구분이 모호해지고 차이가 없어진다는 해석이다.

그에 따르면 현대 사회는 생산물이 소비되는 것이 아니라 기호가 소비된다. 현대사회는 모사된 이미지가 현실을 대체하는 복제의 시대라는 그의 이론은 철학 뿐 아니라 미디어와 예술 분야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는 현대성에 대한 가장 뛰어난 해석자 중 한 사람, 프랑스의 주도적인 포스트모던주의자로 꼽힌다.

'소비의 사회', '기호의 정치 경제학 비판', '푸코 잊기','시뮐라크르와 시뮐라시옹', '숭고한 좌파', '걸프전은 일어나지 않았다' '아메리카' 등이 주요 저서다.

그는 1991년 "걸프전에서 어느 쪽도 승리를 주장할 수 없고 전쟁은 이라크에서 아무것도 변화시키지 않았다"며 "걸프전은 일어나지 않았다"는 도발적인 주장으로 주목받았다.

그는 '테러리즘의 정신'이란 에세이에선 2001년 9.11 사태를 '스스로에 맞서 싸우는 승리하는 세계화의 표출'로 묘사해 새로운 논쟁을 유발했었다.

그는 문학 포럼 참석차 2005년 5월 한국을 방문한 자리에서 "한반도가 통일돼 물질적이고 가시적인 경계가 사라지면 문화적이고 비물질적인 대립과 분쟁이 유발될 수 있다. 한국은 여기에 대비해야 한다"며 조언했었다.
자료 출처 : http://www.pressian.com/scripts/section/article.asp?article_num=4007030709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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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드리야르는 '호기심' 그 자체였다"
[프레시안 2007-03-08 10:12]  
'통찰력의 새 지평을 연' 보드리야르 서거에 부쳐

 [프레시안 최연구/기획위원·프랑스 마르느 라 발레 대학교 국제관계학 박사]

   10년 전 미국의 물리학자 앨런 소칼과 벨기에의 물리학자 장 브리크몽은 <지적 사기>라는 책을 통해 프랑스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자들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장 보드리야르, 쥘리야 크리스테바, 자크 라캉, 질 들뢰즈, 펠릭스 카타리 등이 집중적으로 도마에 올랐다. 포스트모더니즘으로 통칭되는 프랑스 철학은 겉치레와 수사, 현학을 빼면 아무 것도 남는 것이 없는 지적인 사기라는 독설을 퍼부었고,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은 자신들의 상대주의를 정당화하기 위해 과학철학의 개념을 오용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 보드리야르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모사와 복제에 의한 가상실재'로 규정한 시뮐라시옹 이론으로 유명하다.

  이에 프랑스 철학자들은 "과학의 단선적 객관성을 잣대로 인문학을 바라보려는 과학주의자들의 시각이야말로 또 다른 권위주의"라고 반박했다. 이렇게 해서 촉발된 것이 이른바 '과학전쟁'이다. 당시 소칼과 브리크몽에게 엄청난 비판을 받았던 사회학자 장 보드리야르는 "지식인의 비굴함과 나태는 우리시대의 올림픽 종목이 돼버렸다"는 의미 있는 말을 남겼다.

  20세기 후반과 21세기 초반 현대 프랑스 철학을 풍미했던 포스트모더니즘의 대가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가 지난 3월 6일 향년 77세의 나이로 타계했다. 자크 라캉(81년 사망), 질 들뢰즈(95년 사망), 자크 데리다(2004년 사망)에 이어 현대 프랑스 철학의 또 하나의 큰 별이 진 것이다. 프랑스 최고권위의 일간지 르 몽드와 지식인들이 즐겨보는 리베라시옹은 3월 7일자 1면 톱기사로 보드리야르의 사망 소식을 전했다. 프랑스 사회에서 보드리야르의 비중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섹스, 언어, 기호, 상품, 전쟁 등 그 어떤 것도 이 사회학자의 역설적인 분석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었다. 장 보드리야르는 호기심 그 자체였다." 리베라시옹은 보드리야르의 죽음을 애도하며 그의 학문적 업적을 기렸다.

  1929년 7월 20일 랭스에서 태어나 대학에서 독일어를 공부했고 브레히트나 맑스의 번역자이기도 했던 보드리야르는 1966년 파리 10대학 낭테르의 강단에 서면서 사회학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여러 학위들을 고려했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1965년 사회학만이 유일하게 개방적인 학문이었다."사회학을 선택했던 이유를 그는 이렇게 회고했다.

  그의 박사논문이자 첫 번째 저작인 <사물의 체계(1968)>와 1970년에 출간한 <소비의 사회>는 그를 일약 대철학자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현대인의 일상을 소비라는 측면에서 해부한 보드리야르는 현대인들이 물건의 본연의 기능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상품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위세와 권위, 즉 기호를 소비한다고 주장해 큰 반향을 얻었다.

  그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시뮐라크르와 시뮐라시옹>(1981)에서는 독창적인 분석을 통해 포스트모던 사회의 본질을 꿰뚫고 있다. 실재가 아닌 파생실재로 전환되는 작업이 시뮐라시옹(Simulation)이고 모든 실재의 인위적 대체물이 '시뮐라크르(Simulacre)'인데, 그에 의하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모사와 복제에 의한 가상실재, 즉 시뮐라크르의 미혹이라는 것이다. 현대사회는 모사된 이미지가 현실을 대체하는 복제의 시대라는 그의 독특한 분석과 이론은 현실과 가상의 경계 허물기를 시도한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의 흐름을 이끌었고 미디어와 예술분야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그는 일상생활의 사회학자 앙리 르페브르(Henri Lefebvre, 1901-1981)의 제자로 초기에는 맑시즘을 신봉했으나 1973년 <생산의 거울>이라는 책을 통해 맑시즘과 결별하고 구조주의와 기호학에 관심을 쏟았으며 그 뒤 줄곧 포스트모더니즘적인 사회이론을 전개해 왔다. <상징적 교환과 죽음>(1976), <푸코 잊기>(1977), <침묵하는 다수의 그늘 아래서>(1978), <유혹에 대하여>(1979), <시뮐라크르와 시뮐라시옹>(1981), <차가운 기억들 1,2,3>(1987~95), <아메리카>(1986), <악의 투명성>(1990), <완전범죄>(1994), <이타성의 형태들>(1994) 등 50편에 이르는 저작을 남겼고 그의 책의 한국에서도 20여 권이 번역되었다.

  그의 포스트모니즘은 1991년 걸프전 당시에도 지성계를 뒤흔들어놓았다. 걸프전이 한창일 때 그는 "걸프전은 일어나지 않았다"고 주장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미사일이 정확히 투하돼 목표물이 파괴되는 장면은 실제 아주 무섭고 비참한 것이지만 안방에서 TV를 보는 사람들은 컴퓨터 게임 속 가상현실처럼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포스토모던 현실 속에서는 일상과 가상의 구분이 모호해지고 모사된 이미지가 실재를 대체하고 있다는 것이다.

  2005년 한국을 방한했던 보드리야르는 "한국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복제실험은 자연현실의 부정이라는 점에서 시뮐라시옹의 극단적 사례"라고 주장했고, "문화와 예술, 행동양식에서 기호를 통한 현실의 재현을 가리켰던 근대의 시뮐라시옹과 달리 현대의 시뮐라시옹은 급격한 변화와 전이, 도약을 통해 더 이상 재현이 아니라 가상현실로 넘어간다"고 설명하며 '극단적 현실 청산에 대한 두려운 전망'을 언급한 바 있다.
  
▲ 1968년 출판된 보드리야르의 박사논문이자 첫 번째 저작 <사물의 체계> 표지

  그의 자취는 현대사회학과 철학에 큰 족적이 아닐 수 없다.

  "소비는 일종의 신화이자 현대사회 스스로에 대한 표현이며 (…) 충만한 자기예언적인 담론이고 (…) 총체적인 해석체계이자 사회가 스스로를 극도로 향유하는 거울이며, 예견을 통해서 사회가 스스로 성찰하는 유토피아이다."

  소비에 대한 탁월한 분석과 통찰력을 담은 <소비의 사회>는 그의 학문적 입지를 단숨에 다져놓았다. 이 책의 서문에서 리딩대학교 토크빌연구소 메이어 교수는 "보드리야르의 <소비의 사회>는 뒤르카임의 <사회분업론>, 베블렌의 <유한계급론>, 데이비드 리스먼의 <고독한 군중>과 같은 책의 대열에 자리 잡고 있다"고 격찬했다. 모더니티에 대한 분석, 현대사회의 작동기제와 이면에 대한 독특한 해석은 우리시대 지성의 폭을 크게 넓혀놓았고, 무한한 통찰력의 새 지평을 열었다.

  '참여하지 않는 지식인', '유토피아적 망상가'라는 그에 대한 비판도 있지만 장 보드리야르의 인문학적 상상력과 자유로운 통찰력은 누가 뭐라고 해도 인류의 지적 자산을 풍성하게 하는 자양분이다. 한때 시대를 풍미했던 프랑스 현대철학자들이 하나둘씩 떠나간 빈 공간에 그가 우려한 바와 같이 지식인의 무기력과 나태함이 자리잡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이 때문에 그가 떠난 빈 자리가 더욱 크게 느껴진다.
최연구/기획위원·프랑스 마르느 라 발레 대학교 국제관계학 박사 (belleza@pressian.com)

자료 출처: http://www.pressian.com/Scripts/section/menu/print.asp?article_num=40070308092524


by 물안경 | 2007/03/15 14:19 | 나뭇잎 편지: 예술 소식 | 트랙백 | 덧글(1)

예술의 종말 이후 | 아서 단토 | 미술문화

서구미술은 죽었다...다원주의 비평의 길 모색

저 자 : 아서 단토 / 이성훈, 김광우 역
발행일 : 2004-04-20
ISBN# : ISBN 89-86353-81-4
판 형 : 신국판
페이지 : 448
가 격 : 20,000원

고대하던 책이 산고 끝에 나왔다.
아서 단토의 이름은 미국 내 미술사가, 미학자, 비평가들의 글에서만 언급되는 것이 아니라 유럽에서도 폭넓게 언급, 인용되고 있다. 우리 나라에서도 여러 차례 단토의 "예술의 종말"론이 학회에서 발표되었으며, 많은 사람들이 직간접적으로 그의 이론의 중요성을 언급하였다.
그의 이론이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이유는 "예술의 종말"을 주장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는 포스트모던이라는 용어로 현대미술을 규정하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주장하면서 동시대contemporary라는 용어로 현대 예술의 방향을 설정하고 있고, 이것은 세계적 조류가 되었다. 이렇듯 그의 저서가 갖는 의미가 큼에도 불구하고 여태까지 번역서가 나오지 못한 것은 복잡하고 난해한 그의 문장 구조와 고대에서 현대를 아우르는 방대한 규모의 내용, 라틴어, 독일어 등을 원어로 사용하는 등의 이유로 번역하기가 매우 어려웠기 때문이다.
미술문화는 3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미학과 철학을 각각 전공한 역자들을 통해 번역에 완전을 기하려고 노력했고, 이에 우리 나라 독자들에게 단토의 이론을 소개할 수 있게 되었다. 무엇보다 반가운 일은 단토가 우리 나라 독자들을 위해 손수 서문을 써서 보내준 것이다. 우리 나라 도예에 관해 관심이 많은 그는 서문에서 다원주의에 따른 우리 나라 미술의 노력과 가능성을 인정하고 시사한다.
<브릴로 상자>가 예술의 종말을 고했다.
단토는 1960년대 중반 앤디 워홀의 작품 <브릴로 상자>를 예로 들어 이는 양식의 문제가 아니라 예술 개념 자체의 종식을 의미하는 작품이라고 주장한다. 서양의 예술 개념은 플라톤의 『국가』과 그 밖의 저서에서 언급된 ‘모방’이었다. 그리스 예술의 대부분 특히 조각과 드라마가 모방적mimetic이었으므로 플라톤이 예술을 모방으로 본 것은 당연했다.
시각 예술을 모방으로 보는 시각은 르네상스를 거쳐 1960년대까지 아무런 회의도 없이 고정 관념화되었다. 20세기 모던 아트는 이 고정 관념의 현대식 해석으로 등장했다. 이것은 각기 자체의 용어로 미술을 정의하고자 시도?경합한 동향들 중 견줄 나위 없이 두드러진 모습이었다. 모더니즘 최고 성과물 가운데 하나는 선언문이다. 단토는 선언문을 미적 이데올로기가 새로운 사회적, 정치적 요구 안에서 작용하는 미술의 역할을 규정하는 것처럼 미술의 미래에 대한 방향을 설정하는 예술적 문서나 다름없다고 보고, 모더니즘 시기에 선언문의 규정에 맞지 않는 것은 미술로 인정받지 못하는 경향이 농후했음을 지적한다. 이렇게 고정화된 미술 개념의 붕괴는 곧 미술사의 붕괴를 의미했다.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 발발했을 당시는 그 의미를 알지 못하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에야 역사의 반성에서 그 의미를 발견하고 확립하게 되듯 1964년 워홀의 <브릴로 상자>에 어떤 가치가 있는지를 깨닫지 못했다. 하지만 단토는 1980년대 중반 자신이 20여 년 전 화랑에서 본 워홀의 <브릴로 상자>를 떠올리고 그 작품이 의미하는바가 미술사의 붕괴임을 깨닫게 된 후 "예술의 종말"이란 논문을 발표했다.
예술의 종말 이후는 새로운 예술의 개념으로 출발이 약속된 시대이다.
예술의 종말은 서양 예술의 종말을 의미한다. 그렇다고 해서 동양 예술과는 관련이 없다고 말할 수 없는 이유는 종말의 의미가 시사하는 바가 크고 종말 이후 동시대의 성격에는 다원화에 따른 동양 예술의 위상이 그 어느 때보다도 높아졌기 때문이다. 이제 예술계는 서양과 동양으로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고 지구화의 시대를 맞아 하나의 예술계를 형성하게 되었으므로 서양 예술의 종말과 새로운 개념에 의한 새 출발은 동양 예술의 각성과 더불어 다원적 예술에 대한 공통의 의미를 함께 고민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예술적, 철학적 논제가 된다.
단토는 유럽의 특정한 지역 내에서의 예술만을 예술로 인식하고 유럽 밖에서 행해지는 그 밖의 예술을 예술로 받아들이지 않았던 데 대해 반성을 요구한다. 19세기 말 고갱을 비롯한 유럽의 미술가들은 아프리카, 아시아, 5대양의 예술을 접하면서 모방이 더 이상 예술적 이상이 아니라는 것에 대해 놀라워했다. 이러한 사실은 "시각 예술이란 과연 무엇인가?" , "궁극적으로 미술 자체란 무엇인가?"하는 집요한 의문을 발생시켰다.
미술가들은 곧 미술이 어떤 사물에 대해 시각적으로 유추할 수 있는 내용이 남아 있지 않은, 다시 말하면 어떤 것에 대한 모방이 없는 가운데 완전 추상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한 그들은 마르셀 뒤샹이 미술가가 만들지 않더라도 미술품이 될 수 있음을 발견한 것 같이 미술품이 되기 위해서 반드시 지녀야 하는 특정한 방식이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하나의 단순한 도구도 미술품이 될 수 있으며 상품을 담은 상자도 작품이 될 수 있듯이 변용을 통해 평범한 것도 미술품이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또한 그는 다원주의를 예고하는 유럽 중심의 역사의 울타리의 붕괴가 시작되었으며 이는 모든 양식이 동등하게 취급되어야 하는 것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미술사를 양식의 역사로 보고 미술품의 질적 차이를 양식의 차이로 논하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말한다. 단토의 예술의 종말 혹은 미술사의 종말이란 한편으로는 미술 운동들의 종말 또는 선언문들의 종말을 의미한다. 모든 양식이 우열 없이 동등해야 하는 다원주의에 대한 인식을 뜻한다.
단토는 포스트모더니즘이란 용어의 사용을 반대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이란 말을 널리 퍼뜨린 찰스 젱크스는 『포스트모던 건축의 언어』(1975)와 유사한 여러 저서에서 국제 현대 양식에 대한 반동으로 등장한 경솔한 절충주의를 설명하기 위해 이 용어를 사용했다. 포스트모던 건축가들은 지역적이고, 전통적인 원천으로 되돌아갔으며 종종 "익살스러운" 방법으로 색채와 장식을 도입했다. 건축 외의 분야에서 어떤 작품을 포스트모더니즘으로 분류하는 것은 더욱 어렵지만 공통점이 없는 양식들을 비슷하게 혼합하거나 역설적 방법으로 의식적인 문화적 참조들을 나타내는 회화와 조각이 포스트모더니즘으로 분류된다. 로버트 벤투리는 『건축에서의 복잡성과 모순』(1966)에서 가치 있는 공식이 있다면 "순수한" 것보다는 혼성된 것, "단정한"것 보다는 절충된 것, "명료한"것보다는 "모호한" 요소들이 "흥미로운"만큼 외고집 스럽다"고 기술했는데, 이 공식을 적용하면 로버트 라우센버그의 작품, 줄리앙 슈나벨과 데이비드 살레의 그림, 그리고 프랭크 게리의 건축물이 포스트모던이라고 할 수 있지만 제니 홀쩌나 로버트 맨골드의 작품에는 이 공식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단토는 포스트모더니즘을 하나의 양식으로 보고, 모더니즘의 계승인 동시에 초월이라는 식으로 그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잘못임을 지적한다. 그는 현대의 예술계를 예술의 종말 이후 혹은 동시대란 용어로 지시하는 것이 적합함을 주장한다.
그렇다면 새로운 예술의 정의란 무엇인가?
단토는 미술이 모든 종류의 미술, 온갖 질서의 미술과 양립 가능하기 위해서는 미술에 대한 정의가 최소한으로 약화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는 최소한의 정의에서 미술품으로 인정받으려면 반드시 어떤 의미를 지녀야 하고 그 의미가 작품에서 물질적으로 구성되어야 함을 주장한다. 이는 오브제가 해석을 통해 작품으로 변용되어야 하며 그 오브제에 읽을거리가 있어야 함을 뜻한다. 요컨대 이는 미술품으로 존재하려면 관람자가 이해할 수 있는 비평이 따라야 한다는 것이며 비평가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도 커졌음을 의미한다.
비평은 작품에 대한 판단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의 성립에도 작용한다. 과거에는 작품을 성립하는 판단 기준이 작품이 제작되기 전에 미리 존재했지만 동시대에는 작품을 규정하는 기준을 미술가가 스스로 제시해야 한다. 그만큼 동시대 미술이 전문적이고 자기 지시적이기 때문이다. 동시대 미술이 철학과 상보적 관계를 이룰 수밖에 없는 이유는 작품의 구성은 눈으로 파악되지만 그 의미는 눈으로 읽어낼 수 없기 때문이다.  글 / 최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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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아서 단토는 ‘예술의 종말’이라는 테제를 통해 오늘날의 미술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 그가 말하는 ‘예술의 종말’은 예술의 생산이 멈췄다는 의미도 아니고 새로운 예술의 창조 가능성이 고갈됐다는 의미도 아니다. 그렇다고 예술이 철학이 됐다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서구에서 미술(예술)의 개념이 출현한 이래 1960년대에 이르기까지의 미술사를 발전적인 거대한 내러티브(great narrative)로 파악할 수 있는데, 이 내러티브가 종말에 이르렀다고 보는 것이다. 그는 종말 이후 시기의 예술은 더 이상 나가야할 특정한 내적인 방향이 없는 자유로운 상태, 무엇이든지 예술이 될 수 있는 시기, 즉 다원주의 시기라고 진단한다.
팝 아트의 등장을 통해 일상 사물(예컨대 슈퍼마켓에 진열된 브릴로 박스)과 이것과 유사하게 만들어진 예술작품(워홀의 ‘브릴로 박스’) 중 어느 것이 예술작품인지 눈만으로는, 즉 지각적인 성질만으로는 구분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제까지 예술의 본질을 탐구해 자신의 작품을 통해 그것을 제시하는 것을 자신의 임무라고 믿고 있었던 예술가들은 팝 아트의 등장 이후 예술의 본질을 탐구하는 과제는 예술가의 과제가 아니라, 철학자들의 과제라는 것을 자각하게 됐다. 이제 예술가는 예술의 본질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더 이상 추구할 필요가 없어졌다. 따라서 예술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든, 어떤 정치이념을 표방하든) 무엇이든지 원하는 것을 자유롭게 추구할 수 있는 단계에 도달했다고 단토는 보는 것이다.
단토의 예술종말론은 오늘날 예술이 나아가야 할 특정한 역사적 방향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과 오늘날은 어떤 형태를 지녔든지 관계없이 무엇이든지 예술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을 함축하고 있다. 전자의 주장의 정당성은 예술의 발전적 내러티브의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고, 후자의 주장은 예술 비평에서 가치평가와 양식의 문제와 관련해 검토해볼 수 있다.
전자와 관련해 문제가 되는 것은 단토의 내러티브가 자신의 자의적인 목표가 아닌 타당한 근거에서 세워진 목표라고 할 수 있는가다. 왜냐하면 예술의 목표를 무엇으로 설정하느냐에 따라 다양한 내러티브가 만들어질 수 있고, 그 내러티브에서 포섭할 수 있는 다양한 발전의 이야기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단토는 자신의 내러티브를 가능하게 하는 근거로서 미술 생산의 객관적인 역사적 구조가 실제로 존재하고 있고, 그 구조를 자신의 이론이 잘 수용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시도한다. 단토의 주장은 예술이라면 필연적으로 종말을 고한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분석하고 있는 서구의 미술사적 구조에 놓여진 예술은 종말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단토의 예술종말론은 모더니즘의 프로젝트가 내적으로 붕괴되고 다원주의가 발생했다는 것을 적절히 설명해 주고 있다고 볼 수 있지만, 이 주장이 경험적 주장이라면 지금까지의 예술의 진행 과정을 보다 더 적절히 설명할 수 있는 또 다른 모델이 만들어 질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단토의 후자의 주장은 모더니즘 비평이 몰락한 이후의 비평의 빈 자리를 채워준다고 볼 수 있다. 다원주의 시대의 예술비평은 그 이전 시대의 비평처럼 ‘예술이 무엇인가’ 라는 이론적 반성에 구속된 비평을 할 필요가 없다. 이제 비평의 임무는 개별 작품들이 제각기 추구하는 목표, 작품들의 의미, 그리고 의미를 구현하는 방식에 대해 설명하는 것이다. 미술가들은 자신만의 표현적 목적을 위해 무엇이든지(예컨대 동굴벽화, 바로크 초상화, 중국의 산수화의 양식, 다른 작가의 작품의 이미지 등) 이용할 수 있다. 다원주의 비평은 하나의 양식을 옹호하는 형식의 비평이 아니라 사용한 이미지가 무엇을 지시하는지 그리고 작가가 무엇을 나타내려고 그 양식을 이용하는지 추론하는 형태가 된다는 것이다.
글| 2004년 06월 09일 (수) 장민한 서울대 미학  editor@kyosu.net

by 물안경 | 2007/03/15 13:46 | 책 읽는 마을: 서평 모음 | 트랙백 | 덧글(0)

카메라 루시다 | 롤랑바르트 | 열화당

카메라 루시다를 읽고
권은영
 
책 제목: 카메라 루시다(Camera Lucida. 1980).
저자: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
역자: 조광희& 한정식.
출판사: 열화당.
출판년도: 1986. 10. 6./1998. 6. 10.
책 가격: 3000원.(신판/6800원)
총분량: 125쪽/143쪽.
  누군가 올린 글에서 보았던 문구가 기억난다. "내 대학시절을 관통했 던 것은 롤랑 바르트였다" 내게도 롤랑 바르뜨(Roland Barthes, 1915-80)는 정운영, 김승옥, 그리고 안치운과 함께 내 20대 전반을 결 정지었던 사람으로 기억된다.(발터 벤야민이 그랬던 것처럼..) 1991년 여름, 학교도서관에서 우연히 발견한 롤랑 바르트의 <카메라 루시다>. 그때 이 책은 우연히도 문학서적 코너에 꽂혀 있었다.
  그때 는 소설을 주로 읽었기 때문에, '미술'이나 '사진'은 관심의 대상이 아 니었다. 그러나 이 책을 접하고 난 뒤에는 사진이 관심의 영역속으로 들어왔다. 그만큼 이 책에 깊이 매료되었기 때문이다. 사진에 내재된 내러티브가 내 안에 어떤 울림을 줄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내게 있어 사진은 단순히 화학적인 작용의 결과물이었고, 따라 서 별다른 의미를 획득하지 못하고 있었다. 지금 내게, 그런 생각들은 더 이상 유효하지 못하다. 아니, 바르트의 "카메라루시다"(Camera Lucida: 빛의 방)를 읽고 난 후부터 사진에 대 한 생각이 달라졌다고 하는 게 좀더 정직할 것이다. 이 책은 '사진에 관한 노트'라는 부제를 가지고 있다.
  원제는 "밝은 방"(La chambre claire-Note sur la photographie)이지만, 카메라 루시 다란 제목으로 번역되어 나왔다. 책의 맨 앞 표지엔 '다니엘 부디네'(Daniel Boudinet)의 폴라로이드 (Polaroid, 1979.) 사진이 보이고, 몇장을 넘기니 "사르트르의 상상적인 것에 바침"이라는 오마주(homage)가 쓰여 있다.- 사실, 이 책은 실존 적, 현상학적 세계관으로 열림의 세계를 두드리고 있다. 그것은 바르트 의 미학적 건반이 세계와 반응해서 공명하는 울림들. 본문의 첫 페이지를 읽는다. "아주 오래전 어느날, 나는 우연히 나폴레옹의 막내 동생인 제롬 (Jerome, 1784-1860)의 사진 한 장을 보았다. 1852년에 찍은 것이었다.
  그때 나는, 그 이후에도 결코 지워버릴 수 없는 놀라움과 함께, '나는 지금, 황제를 직접 보았던 두 눈을 보고 있다'고 말했다. 때때로 나는 이 놀라움에 관해 이야기 했지만, 아무도 그것에 공감하거나 이해하는 것 같지 않아 보였기 때문에(삶이란 이처럼 작은 고독의 상처들로 이 루어져 있다), 나 자신도 그것을 잊어 버렸다.
   사진에 관한 나의 흥미 는 좀더 문화적인 윤곽을 띠었다."(11p.) "삶이란 이처럼 작은 고독의 상처들로 이루어졌다"(la vie est ainsi faites a coups de petites solitudes.)는 문장이 나를 찌른다.(+.#) "우선 나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발견했다. 사진이 재현시키는 무수한 것들은 단 한번밖에 일어나지 않았던 현상이다. 즉 사진은 실존적으로 다시는 되풀이될 수 없는 것을 기계적으로 재생시킨다. 사진에 찍혀 있는 사건은 결코 그 이외의 것을 향해 자신을 넘어서지 않는다. 사진 은 항상 내가 필요로 하는 표본을 내가 보고 있는 특정한 물체로 이끌 어 간다."(12p.) 여기 한 장의 사진이 있다.
  그 사진 속엔 반팔 남방을 입고 웃고 있는 내가 있고, 강아지를 들고 웃고 있는 내 친구와 친구의 동생이 아랫도 리를 드러낸채 얼굴을 찡그리고 있다. 이 사진을 찍었을 때가 아마도 1978년 여름이었던 것 같다.(태양이 가쁜 숨을 몰아쉬던 기억이 난다) 이제 막 국민(초등)학교에 들어갔던 나는 학교라는 낯선 체계에 눈 뜨게 되었고, 올더스 헉슬리식으로 말 해, 놀라운 신세계에서 허둥대고 있었다. 그때 여덟 살이었던 나와 일곱살이었던 내 친구 "범형이", 그리고 세 살이었던 친구의 동생 "범석이". 지금 범석이는 군대에 가 있을만큼(백 혈병에 걸려서 군대에 가지 못했으며 지금 아파하고 있다) 자랐으며, 나와 내 친구는 스물 아홉과 스물 여덟의 언덕에 올라 서 있다. 이 사진 속의 나와 지금의 나 사이에는 약 20년의 시간의 강이 흐르 고 있다. 어떻게 해서 이 사진을 찍게 되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그 사진을 찍은 장소는 알고 있다.
  그 장소는 바로 외할머니집이었다. (지금 그곳엔 외할머니가 살고있지 않다) 롤랑 바르트식으로 말하자면 이 사진의 "푼크툼"(punctum)은 설명될 수 없는 그 무엇, 그리고 그건 사진 내부에서 튀어나와서 <나>를 찌 르는 것. 그것은 친구 동생의 벌거벗은 아랫도리와 역 브이자 모양의 발의 포즈에 있다. 이런 사소한 것들이 환유적으로 내게 다가오는 것. 그건 온전히 그 대상물에 추억이 있는 내게만 유호할 코드일 것이다. "스투디움"(studium)은 이 사진의 배경을 이루는 것, 그리고 나와 내 친구가 입고 있던 옷. 이런 것들의 정보라고 말할수 있다. "이 처럼 이 사진 저 사진을 살펴보는 동안(사실을 말하자면, 이 사진 들은 지금까지 모두가 공적인 것들이었다), 나는 아마도 내 자신의 욕 망이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가를 깨달았겠지만, 아직도 사진의 본질(그 리스어로 eidos)를 찾아내지는 못했다. 나의 기쁨은 불완전한 중재인었 음을 향락적주의적인 계획으니 축소된 주관성은 보편적인 것을 알아 볼수 없었음을 인정해야만 했다." "나는 사진의 증거, 사진을 바라보는 어떤 사람이라도 볼수 있는, 그 리고 그가 보기에 그것을 모든 다른 영상과 구별시켜 주는 이 사물을 찾아내기 위해서, 내 자신속으로 더 깊이 내려가야만 했다. 나는 나의 개영시(먼저 썼던 시를 취소하는 시-역주)를 써야만 했다."(61-63p.) 바르트는 "이미지의 수사학에서"(Rh torique de l'image) 이미지라는 단어의 기원을 이미타리(imitari)에서 찾았다. 그건 미메시스(mimesis) 와 교차하는 지점의 언어. 사실, 라틴어 "이마고"(imago)는 재현적 유 사성의 현상적 의미를 말한다. 그건 '레지스 드브레'(R gis Dever s)의 말대로 유령같은 이미지이고, 또한 이미지는 하나의 마술이다. "사진은 과거를 회상시키지 않는다.(사진에는 프루스트적인 것이 없 다) 사진이 나에게 일으키는 효과는 사라진 것(시간에 의해, 거리에 의 해)을 되돌려 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지금 보고 있는 것이 참으로 존 재했음을 증언하는 데에 있다.
  그런데, 이것은 정확히 수치스러운 효과 이게 한다." "언제나 사진은 무한히 지속되고 새로워지는 놀라움, 이 고집스러움 은 나를 형성시킨 종교적 실체 속으로 스며드는 모양이다. 그러므로 나는 어찌할 수가 없다. 사진은 부활과 관계되는 무엇인가를 지니고 있다. 우리는 비잔틴 사람들이 토리노의 성해포(성해포)에 배어든 예수 의 모습에 관해서 말하는 것, 즉 그것에 결코 인간의 손에 의해 만들 어지지 않았음(acheiropoietos)을 사진에 관해서도 말할 수 있지 않을 까."(84p.) 바르트는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이 30년대에 사진에 관해 썼 던 바로 그 의미. 그러니까 "중요한 건 사진이 예술이냐, 아니냐가 아 니라, 사진이 발명됨으로서 예술계 전반의 흐름이 바뀔수 있다는 점이 다"의 언술적 가치들을 이 책에서 되살리고 있다. "내가 어떤 사진들에 관해 품은 애착에 대해 자문했을 때(이미 오래 전의 일이지만, 이 책의 처음에), 나는 문화적 흥미의 영역(스투디움)과 때때로 이 영역을 가로질러 찾아오는 그리고 내가 푼크툼이라고 부른, 얼룩말 같은 어떤 줄무뉘를 구분할 수 있으리라고 믿었다.
  나는 이제 '세부'와는 다른 푼크툼(또다른 상처자국)이 존재함을 알고 있다. 이미 형태는 없지만 강도를 지닌 새로운 푼크툼, 그것이 바로 시간이며, 노 에마(Noema: 그것은-존재-했음)의 애절한 강조법, 순수한 표상이 다."(95p.) 해체의 철학자 '자크 데리다'(Jacque Derrida)는 "프시케, 타자의 발 견"(Psyche: inventions de l'autre. 1987)이란 책에서 "푼크툼이라는 미 묘한 장외, 그 코드 밖은 언제나 코드화되어 있는 영역으로서의 스투 디움과 타협하고 있다. 푼크툼은 스투디움에 속하지 않으면서 속하고, 그 안에 위치시킬 수 없으며, 스투디움의 틀지워진 공간이 지닌 동질 적 갠관성 속에 결코 기입되지 않는다. 그러나 푼크툼은 스투디움에 거주하며, 그렇다기 보다는 거기에 출몰한다."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아트리지(D. Attridge)는 "무딘의미는 너무 넓고 둔간적이어서 서사적 재현을 거부한다면, 스투디움(studium)에 대비되는 푼크툼은 너무 좁 고 뽀족하기 때문에 서사적 규칙을 빠져나온다"고 말하고 있다. 바르트에 의하면 사진은 약호없는 메시지로 지칭된다. 그리고 이렇게 고백한다. "유령이 거처하는 곳은 푼크툼(punctum)이다. 나는 사진의 깊이를 파고들어갈 수도, 그것을 꿰뚫어볼 수도 없다는 사실이 그것이 다. 마치 흔들림없는 수면처럼, 나의 시선으로 스쳐갈 수밖에 없다." 또한 바르트는 이 책에서 '어머니의 온실사진'을 통해 시간성과 푼크 틈 그리고 스투디움이 동시에 다가오는 것에 대해 이야기 한다. 바르 트의 언어는 차분하게 다가온다. 독자는 바르트의 언어가 함유하고 있 는 대상성이 어떻게 사진의 '노에마'(noema)를 설명하는지 조금씩 알 게 된다.(스투디움은 결국 언제나 기호화되지만, 푼크툼은 그렇지 않다 고 말한다) 그는 빠른 호흡으로 성큼성큼~ 앞으로 나아가기 전에, 넉넉한 호흡으 로 독자의 시각을 이끌어 내고 있다. 사실, 롤랑 바르트의 이 책은 "사 랑의 단상"(Fragments d'un discours amoureux, 1977)과 함께 바르트 의 저작중에서는 읽기가 별로 어렵지 않다는 미덕을 가지고 있다.(이 미덕은 대단히 중요한 미덕이다: 바르트는 여기에 동의하지 않겠지만) 이 책은 롤랑 바르트가 쓴 마지막 저작이다. 이 책은 바르트가 교통 사고(1980년 2월) 후, 절단수술을 거부함으로서 결국 자살에 가까운 죽 음을 맞이한 후, 출간된 저서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책은 내가 바르트에 대해 최초로 알게 해준 책이 다. 그래서 "카메라 루시다"는 바르트대한 출발점이자 귀결점으로 작용 하고 있다. 그것은 내 안에서 의미의 파동을 만들어내고 있다.(의미의 그물망을 잽싸게 낚아채는 키리코) 우리의 바르트는-프랑스 지식인들의 꿈-"꼴레주 드 프랑스"(Col ge de France)의 교수였으며, 열광적인 팬들에 둘러싸인 행복한 삶을 살 았던 작가이다.
  뿐만 아니라 기호학자, 문학비평가로서도 상당히 인정 받았으며, 어떤 이는 "사르트르"(Jean Paul Sartre) 이후, 프랑스 최고 의 지성으로까지 말하고 있다.(프랑스 이외의 지역에서도) 특히 미국 문학비평계에까지 영향력을 미쳤다. 바르트는 구조주의적인 비평을 문학비평에 적용시킨 최초의 문학비평 가로 인정받고 있으며 또한 "저자의 죽음"이란 함축적인 문학관으로 유명하며, 작가가 아닌 독자의 줄거움에 커다란 무게를 두었다. (그러 나 이 즐거움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그런 줄거움하곤 다르 다) 행위자 중심이 아닌, 관객 중심의 문학세계를 주장하는 바르트에게 당대의 시선이 집중되었고, 또 비판도 많이 받았다.   1965년에 소르본대학의 불문학교수로 있던 "레이몽 피카르"(Raymond Picard)의 '새로운 비평이냐, 새로운 사기냐?'(Nouvelle critique ou nouvelle imposture?)는 바르트에 대한 최초의 묵직한 비판이었다. 물 론 이 비판의 논점은 언어의 투명성에 관한 것이다.(이 논쟁은 무명의 바르트를 일약 논쟁의 중심으로 이끌었다.) 바르트는 다양한 모습을 한 인간으로 비추어진다. 스스로의 이론을 부정하는 행동을 즐겨했으며 끊임없이 카멜레온처럼 변신에 능했다. 그는 모순과 모순 사이를 잘 조절하는 재주를 가졌으며 스타기질이 농 후했던 인물이다. 그리고 "줄리아 크리스테바"(Julia Kristeva, 1941-) 같은 사람을 자기사람으로 키우는 선구안도 갖추고 있었다. 이 책의 날개에 실려 있는 "롤랑 바르트"의 사진을 바라보고 있다. 오 른 손가락에 담배를 끼우고 있는 바르트가 올빽을 하고서 나를 바라보 고 있다. 은발이 빛나고 있다.(흑백사진이다) 남방에 니트를 입고 있는 바르트의 고개가 카메라를 향해 비스듬이 돌아 서 있다. 그의 시선은 카메라 앞에 그가 존재했음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바르트는 이미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진 속 의 바르트는 그 자신의 언어처럼 내 의식 속에 숨쉬고 있다. 그건 존 재하지 않되 존재하는 그런 상태, 혹은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그 런 상태로 환원된다. 그래. 다만 바르트는 "거기 있었음"(l'avoir- t -l )의 시제 속에서만 나타난다. 갑자기 푼크툼이 내부로 찔러 들어온다. 헉~.. 허걱~~ 바둥바 둥~ (-_-+) 꼬르르륵.. 120여 페이지의 작은 분량이지만, 이 책은 수잔 손탁(Suzan Sontag)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의 저서들과 함께 사진학의 중심적인 책 으로 꼽히고 있다. 번역도 좋고, 도판들도 풍부하다. 알프레드 스티글 리츠(Alfred Stieglitz), 아우구스트 잔더(August Sander), 루이스 하인 (Lewis H. Hine) 등의 수준 높은 사진들을 맛 볼 수 있어 더욱 좋은 책이다. 바르트의 또 다른 저서인 '롤랑바르트에 의한 롤랑바르트'(Roland Barthes par Roland Bartehs, seuil. 1975)에서 그가 던진 질문인 "무엇 을 뜻하는가"(Qu'est-ce que c'est?)보다, 그것은 "내게 있어 무엇을 의미하는가"(Qu'est-ce que c'est pour moi?)라는 목소리는 여전히 유효한 것이고, 또한 그것은 이 책의 관점을 말해주기도 한다.

by 물안경 | 2007/03/14 18:34 | 책 읽는 마을: 서평 모음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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